[PROJECT 001-광화문 광장#2] - 광장의 축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조선시대 육조거리에서 시작된 역사축이자, 근대 이후 국가 행정의 중심축이며, 동시에 현대 서울의 거대한 교통축이었다. 광화문광장의 축을 설정그것은 역사와 권위, 교통과 보행, 국가성과 시민성을 어떻게 다시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설계적 판단이였다

 

광장의 축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광장축 설정, 시민 동선 그리고 상징축 해석

광화문광장을 설계하면서 가장 먼저 마주한 문제는 “무엇을 어디에 놓을 것인가”가 아니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었다.

광화문광장의 중심축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축 설정을 위한 아이디어 스케치<Sketch by pnh> 

광화문 앞 세종로는 단순한 도로가 아니었다.

이곳은 조선시대 육조거리에서 시작된 역사축이자, 근대 이후 국가 행정의 중심축이며, 동시에 현대 서울의 거대한 교통축이었다.

따라서 광화문광장의 축을 설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평면 위에 선 하나를 긋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역사와 권위, 교통과 보행, 국가성과 시민성을 어떻게 다시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설계적 판단이었다.


축은 이미 그곳에 있었다

광화문광장의 축은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장소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경복궁 과 광화문, 세종로로 이어지는 남북 방향의 축은 오랜 시간 서울의 중심 질서를 만들어왔다.
이 축은 도시의 방향을 잡는 선이자, 권력과 행정의 상징적 구조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 축은 점점 다른 성격을 갖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육조거리가 국가 행정의 상징축이었다면, 근현대의 세종로는 자동차 중심의 도시 교통축으로 변했다.
역사적 축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시민이 그 축을 온전히 경험하기는 어려웠다.

당시 우리가 보았던 세종로는 상징적 중심축이면서도 동시에 보행자에게는 단절된 공간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고민은 단순했다.

이미 존재하는 역사축을 어떻게 시민이 걸을 수 있는 축으로 바꿀 것인가?


국가상징축에서 시민의 축으로

광화문광장은 국가를 상징하는 장소이다.
하지만 동시에 시민들이 머물고, 걷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공공공간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성격은 때로 충돌한다.

국가상징축은 질서와 위엄, 정면성과 비움을 요구한다.
반면 시민의 축은 움직임과 머무름, 우연한 만남과 다양한 활동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이 두 성격을 어느 하나로 정리하기보다, 서로 겹쳐지게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초기 스케치에서는 직선적인 중심축 위에 유기적인 흐름이 계속 덧입혀졌다.
정면성을 가진 역사축은 유지하되, 그 위를 시민의 움직임이 부드럽게 가로지르거나 따라 흐르는 방식이었다.

즉, 광장을 단순히 “보는 공간”이 아니라 “걷고 경험하는 공간”으로 바꾸려는 시도였다.


시민 동선은 축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다

광화문처럼 상징성이 강한 공간에서는 보행 동선을 어디에 둘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동선이 지나치게 자유로우면 역사축의 힘이 흐려질 수 있다.
반대로 축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광장은 권위적이고 딱딱한 공간이 된다.

당시 우리는 시민 동선이 상징축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그 축을 살아 있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걷지 않는 축은 단지 기념비적 선에 머문다.
하지만 사람이 걷고, 머물고, 바라보고, 다시 이동하는 축은 도시의 실제 경험이 된다.

그래서 광장 안의 동선은 단순한 이동 경로가 아니라, 광화문의 역사와 현재를 체험하는 방식으로 설정되어야 했다.

우리가 스케치에서 반복적으로 다루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었다.

  • 사람들은 어디에서 광장으로 들어오는가
  • 어디에서 광화문을 바라보게 되는가
  • 어디에서 잠시 멈추게 되는가
  • 어떤 흐름이 세종로 전체를 하나로 묶는가
  • 역사축과 일상 동선은 어디에서 만나는가

이 질문들이 광장축 설정의 출발점이었다.


중심축과 주변 흐름의 관계

광화문광장은 하나의 중심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중심에는 광화문과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강한 남북축이 있지만, 실제 도시의 흐름은 훨씬 복잡하다.

동쪽과 서쪽에는 세종문화회관, 정부청사, 주변 업무시설, 지하철 출입구, 보행 네트워크가 얽혀 있다.
광장은 이 모든 흐름을 받아들이는 도시의 접점이 되어야 했다.

따라서 설계의 핵심은 중심축을 지키는 것과 동시에 주변의 도시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있었다.

우리는 광장을 닫힌 기념공간으로 만들기보다, 주변 도시와 계속 연결되는 열린 장으로 보고자 했다.

중심축은 광장의 정체성을 만들고, 주변 동선은 그 광장을 실제로 사용하게 만든다.
이 둘이 함께 작동할 때 광화문광장은 단순한 상징 공간을 넘어 살아 있는 도시공간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광장축 설정 스케치의 의미

당시의 축 설정 스케치를 보면 여러 선들이 반복적으로 겹쳐져 있다.

그 선들은 단순한 형태 검토가 아니었다.
각각의 선은 서로 다른 질문을 담고 있었다.

하나는 역사축이었다.
하나는 보행 흐름이었다.
하나는 시선축이었다.
또 하나는 도시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선이었다.

스케치 속 선들이 흔들리고 겹쳐지는 이유는, 광화문이라는 장소가 하나의 명확한 답으로 정리되기 어려운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광화문은 너무 많은 시간과 의미를 품고 있다.
그래서 하나의 축만 강조하면 다른 축들이 지워질 위험이 있었다.

우리는 그 복잡함을 지우기보다, 여러 축이 함께 읽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상징축을 해석한다는 것

상징축은 단순히 비워두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축을 사람들이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가이다.

광화문을 바라보는 시선, 세종로를 따라 걷는 흐름, 광장 한가운데에서 느껴지는 스케일, 주변 건물들과의 관계, 그리고 지하와 지상을 오가는 입체적 동선이 모두 상징축의 경험을 만든다.

우리는 광화문의 상징성을 과장된 조형물로 표현하기보다, 공간의 흐름과 시선의 정리 속에서 드러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안에서 상징축은 고정된 기념비라기보다, 사람이 걸으며 발견하는 도시의 기억에 가까웠다.


광장을 흐르게 한다는 것

당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단어 중 하나는 “flow”였다.

광화문광장은 머무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흐르는 장소여야 했다.
세종로라는 긴 도시축 위에 놓인 광장이기 때문이다.

흐름은 단순한 이동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이기도 하고, 차량 중심의 도시에서 보행 중심의 도시로 전환하려는 공간의 흐름이기도 하며, 국가의 상징 공간에서 시민의 공공공간으로 이동하는 의미의 흐름이기도 했다.

따라서 광장을 흐르게 한다는 것은, 그 장소가 가진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경험 속에서 연결하려는 시도였다.


지금 다시 보면

지금 다시 당시의 스케치와 배치도를 보면, 이 안은 강한 중심성을 가진 광장이라기보다 세종로 전체를 하나의 선형 도시공간으로 읽으려 했던 안에 가깝다.

이 점은 분명한 장점이었다.
광화문을 독립된 광장 하나로 보지 않고, 도시 전체의 흐름 속에서 해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약점도 있었다.

강한 상징 장면이나 즉각적으로 기억되는 중심 공간은 상대적으로 약했을 수 있다.
도시설계적으로는 설득력이 있었지만, 공공 프로젝트에서 요구되는 명확한 이미지와 상징성 면에서는 다소 절제된 안으로 보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다시 이 자료를 꺼내보는 이유는, 이 안이 던졌던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광화문광장은 권위의 축이어야 하는가, 시민의 축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 둘이 함께 겹쳐지는 장소여야 하는가?

우리는 당시 후자에 가까운 답을 찾고 있었다.


다음 글에서

다음 글에서는 초기 스케치에 나타난 흐름, 기억, 중심 공간의 개념을 중심으로 정리해보려 한다.

광장을 단순한 평면이 아니라,
사람의 움직임과 도시의 기억이 중첩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던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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