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ery832 Story 003] - 이 땅에는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건축은 대지에서 시작됩니다.

건축가는 먼저 땅을 읽습니다.

Gallery832의 대지는 서울에서도 가장 역동적인 곳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강남역이 가깝고, 예술의전당이 가까우며, 대형 종합병원과 업무시설, 문화시설이 모두 연결된 곳입니다. 도시는 이미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머릿속에는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이 땅 위에 또 하나의 평범한 오피스텔을 올리는 것이 과연 맞을까?'

그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기존의 방식대로 평면을 계획했습니다. 방의 개수를 조정하고, 크기를 바꾸고, 출입동선과 생활동선을 다시 그렸습니다.

수없이 수정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늘 비슷했습니다.

벽의 위치가 조금 달라지고, 문 하나가 더 생길 뿐이었습니다.

머릿속에는 분명 다른 공간이 있었는데, 도면은 계속 그 공간과 충돌하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문제가 평면이 아니라, 대지가 가진 가치와 제가 그리고 있는 공간이 서로 어울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기존 방식의 평면계획으로는 이 땅이 가진 가치를 담아낼 수 없었습니다.

답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땅이 가진 잠재력을 깨워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역삼동은 청담동처럼 하이엔드 주거를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입지라고.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좋은 건축은 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저는 그런 경험을 이미 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건축의 가능성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복층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서울을 품고, 사용자와 대화하며, 나만의 시간에 만족할 수 있는 공간.

그 삶 자체가 하나의 가치가 되는 공간.

대지와 삶의 가치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간.

그것이 Gallery832가 시작된 이유였습니다.


전 세대를 복층으로 계획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일부 세대만 복층으로 계획하는 방안도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공간의 가치는 일부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건축주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왜 기존의 오피스텔을 넘어야 하는지, 왜 새로운 공간이 필요한지, 그리고 이 대지에는 어떤 삶이 어울리는지를 함께 고민했습니다.

다행히 우리의 생각은 같았습니다.

오히려 더 어려웠던 것은 기술적인 문제였습니다.

구조와 설비, 방화와 피난, 공사비와 시공성까지.

복층은 계단 하나를 만드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공간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수없이 문제를 해결하고, 또다시 수정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층의 장점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복층 자체가 장점은 아닙니다.

높은 천장고 자체도 장점은 아닙니다.

높은 공간이 만들어 내는 가치가 장점입니다.

테라스에서 자라본 거실+계단+2층서재
높게 열린 거실은 1층과 2층을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합니다.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시선은 위로 열리고, 공간은 자연스럽게 서울의 도시경관으로 이어집니다.

2층 서재는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고, 테라스는 실내와 도시를 연결합니다.

테라스에서 서울야경을 바라봄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은 자연스럽게 분리되고, 같은 집 안에서도 서로 다른 시간이 흐릅니다.

공간은 단순히 넓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깊어집니다.

그리고 사람의 삶도 함께 깊어집니다.

저는 그것이 공간의 가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공간은 이야기를 한다고 믿습니다.

높은 거실은 개방감을 이야기하고, 2층 서재는 사색을 이야기합니다.

테라스는 계절을 이야기하고, 창은 서울을 집 안으로 데려옵니다.

좋은 공간은 사람에게 말을 겁니다.

말없이 감정을 움직이고, 말없이 삶을 바꿉니다.

그래서 저는 늘 공간이 눈에 보이는 건축을 하고 싶었습니다.

평면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사람의 기억 속에 남는 건축.

그것이 제가 만들고 싶었던 건축이었습니다.


샘플하우스가 완성된 날이었습니다.

오픈하기 전, 저는 혼자 그 공간에 앉아 있었습니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던 공간이 현실이 되어 제 앞에 있었습니다.

수없이 수정했던 계단의 위치.

몇 번이고 다시 그렸던 테라스의 너비.

밤늦게까지 고민했던 조명의 높이.

2층 서재에서 느껴질 공간감.

도면 위에 있던 수많은 선들이 하나의 공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 순간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건축가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잠시 뒤 친구가 올라왔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동안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상상했던 공간이 현실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거면 될 것 같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확신했습니다.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Gallery832는 복층을 가진 오피스텔이 아닙니다.

이 대지가 가진 가치를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답입니다.

저는 지금도 건축은 면적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삶의 방식을 바꾸며,

시간을 담아내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같은 생각을 합니다.

건축은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공간이 사람들의 시간을 품을 때, 비로소 공간은 가치를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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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공간은 디테일에서 완성된다.

[Gallery832 Story]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기록이 아니라, 

건축이 공간이 되기까지의 생각을 기록하는 연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