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ERY 832 STORY 02] - 좋은 평면은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지우는 것이다.
Where a Good Floor Plan Begins
좋은 평면은 공간을 채우는 작업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과정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평면은 없다.
건축을 처음 배우는 학생들이나 젊은 건축가들은 좋은 아이디어 하나가 좋은 평면을 만든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설계는 전혀 다른 과정을 거친다.
구조와 설비, 전기와 소방 등 수많은 협력 분야와 끊임없이 조율해야 하고, 무엇보다 평면은 사람의 생활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사람의 행동과 삶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좋은 평면은 결코 짧은 시간 안에 완성되지 않는다.
수없이 그리고,
다시 지우고,
다시 질문하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
그러나 건축가에게 완벽한 평면은 끝내 존재하지 않는다.
늘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다.
그 간극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다시 평면을 수정하는 것이다.
갤러리832 역시 마찬가지였다.
Story 01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프로젝트는 기존 오피스텔과는 다른 주거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는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고민은 하나의 평면 위에서 수백 번의 선택으로 이어졌다.
수십 번의 수정이 남아 있는 실제 설계도.
도면을 처음 보면 무엇이 바뀌었는지 쉽게 알아보기 어렵다.
건축주와 마주 앉아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수없이 선을 그리고 지우다 보니, 도면은 어느새 하나의 그림처럼 변해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의 모든 공간이 조금씩 움직였고, 모든 공간은 다시 계획되었다.
거실을 조금 넓히고,
식당의 위치를 다시 옮기고,
팬트리를 만들고,
계단을 다시 그리고,
동선을 다시 연결한다.
도면을 덮고 있는 빨간 선은 실패의 흔적이 아니다.
수백 번의 고민이 겹겹이 쌓인 흔적이다.
더 나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끝없이 질문했던 시간의 기록이다.
나는 설계를 하면서 새로운 선을 긋는 시간보다 기존의 선을 지우는 시간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좋은 평면은 비우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설계를 하다 보면 무엇을 더 넣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방을 하나 더 만들고,
수납을 조금 더 만들고,
프로그램을 하나 더 추가하려 한다.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생활에는 더 편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갤러리832는 오히려 반대였다.
무엇을 넣을 것인가보다 무엇을 과감히 덜어낼 것인가가 더 중요했다.
불필요한 벽 하나를 없애는 것이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도 하고,
동선 하나를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생활 전체를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믿는다.
좋은 평면은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지우는 것이다.
기존의 주거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 첫 번째 아이디어.
이 작은 스케치는 갤러리832가 기존 아파트 평면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이다.
공간 사이를 벌려 자연을 담기로 했다.
공간의 독립성은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생활 방식을 제안하고 싶었다.
그 사이 공간에는 테라스를 계획했다.
테라스는 단순한 외부 공간이 아니라 도시인의 삶에 쉼을 제공하는 생활 공간이었다.
현관은 테라스와 마주하고,
실내 가까이 자연을 들여와 공간의 품질을 높였다.
복층에서 느껴지는 공간의 경험 역시 자연과 도시를 함께 품는 공간이어야 했다.
스케치는 답을 그리는 작업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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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면은 결국 공간의 높이까지 바꾸기 시작했다. |
평면을 수정하다 보니 또 하나의 질문이 생겼다.
만약 일반적인 천장고가 아니라 일부 공간에 6.2m 높이의 수직 공간을 만든다면 사람은 어떤 공간감을 느끼게 될까.
초기 스케치에는 8m 이상의 공간도 검토했지만, 실제 갤러리832는 약 6.2m 높이의 복층 공간으로 완성되었다.
복층은 단순히 층을 하나 더 만드는 방식이 아니었다.
높이를 이용하여 같은 면적에서도 전혀 다른 공간 경험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 순간부터 평면은 더 이상 2차원의 도면이 아니라 3차원의 공간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 수많은 수정 끝에 완성된 갤러리832의 평면. |
수십 번의 수정 끝에 평면은 오히려 단순해졌다.
벽은 줄어들고,
동선은 자연스러워지고,
거실과 테라스는 하나의 공간처럼 연결되기 시작했다.
복층은 구조가 아니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되었고,
테라스는 외부 공간이 아니라 거실의 연장 공간이 되었다.
그때 비로소 처음 던졌던 질문에 조금씩 답을 찾기 시작했다.
| 설계는 생각 위에 고민을 덧칠하는 과정이다. |
설계는 생각 위에도면 위에 남은 빨간 선은 결국 하나의 공간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남겨진 메모는 건축가의 생각을 기록한다.
나는 설계를 하면서 도면만 수정한 것이 아니라 생각도 함께 수정해 왔다.
그때 남긴 메모가 있다.
"우리는 생각 선들 위에 고민의 덧칠을 한다."
건축은 살아 있다.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이고,
건물을 만들기 전에 먼저 고민의 흔적을 남긴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 보면 미숙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완성된 결과보다 그 고민의 과정이 더 값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지금도 고민의 흔적을 남기는 건축이 더 아름답다고 믿는다.
| 도면은 결국 공간이 된다. |
완공된 공간을 처음 바라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수십 번의 설계회의와 수백 장의 수정 도면이었다.
그때는 작은 선 하나를 지우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몰랐다.
어쩌면 그것은 두려움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작은 선 하나가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사람의 생활을 바꾸는 선이었다는 것을.
좋은 평면은 보기 좋은 도면이 아니다.
사람이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도면이다.
Closing
나는 지금도 설계를 시작하면 노란 메모지 위에 가장 먼저 선을 긋고 생각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선을 지우는 데 사용한다.
만들고 싶은 모든 공간을 담기보다 정말 필요한 공간만 남기기 위해 수없이 지운다.
지우는 일은 선을 긋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
하지만 그 선이 정말 필요한지 끝까지 질문하는 과정이 좋은 건축을 만든다고 믿는다.
갤러리832는 그 질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믿는다.
좋은 평면은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지우는 것이다.
그리고 오래전 메모장에 적어 두었던 문장을 다시 떠올린다.
우리는 생각 선들 위에 고민의 덧칠을 한다.
건축은 벽돌 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생각 위에 남겨진 고민의 흔적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좋은 평면은 그렇게 수없이 지워진 선들 위에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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