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001-광화문 광장#1] - 광화문을 읽는 과정
광화문을 읽는 과정
세종로 이야기, 현장사진 그리고 역사축과 도시축
광화문(光化門)은 “임금의 뜻으로 백성을 밝게 만드는 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600년이라는 긴 시간을 품은 채, 광화문 은 서울의 중심에서 묵묵히 시대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광화문 앞은 조선시대 육조거리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국가 행정기관들이 길 양옆으로 늘어서 있던 공간이다.
현재의 세종대로 가 바로 그 자리이다.
그리고 세종로는 오늘날 광화문광장 으로 다시 태어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공공간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의 광화문광장은 국가적 행사가 열리고, 시민들의 의견과 감정이 표출되며, 때로는 축제의 공간이 되고 때로는 사회적 목소리가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하지만 광화문광장을 바라볼 때마다 늘 하나의 질문이 남았다.
광화문광장은 과연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가?
2007년 광화문광장 아이디어 현상설계
2007년 서울시는 새로운 광화문광장을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 현상설계를 진행했다.
그 프로젝트는 단순히 광장을 새롭게 만드는 작업이 아니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중심축을 다시 읽고, 대한민국의 역사성과 현대 도시 구조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우리 역시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비록 최종적으로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당시의 고민과 스케치, 현장 기록들을 지금 다시 돌아보면 여전히 의미 있는 질문들이 남아 있다.
이번 기록은 그 당시의 자료들을 하나씩 다시 꺼내어, 우리가 광화문이라는 장소를 어떻게 읽고 있었는지를 정리해보려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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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세종로 모습 — 광화문이 재건 중이다. (사진 PNH) |
세종로를 읽는다는 것
설계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했던 일은 형태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었다.
우리는 먼저 세종로라는 장소를 읽으려 했다.
당시 참고했던 책 가운데 하나가 《세종로 이야기》였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세종로와 광화문 일대가 어떤 시간의 층위를 지나 현재의 모습에 도달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였다.
지금의 세종로는 거대한 차도와 행정 건축물들 사이에 놓인 도시 공간처럼 보인다.
하지만 원래 이곳은 조선시대 육조거리가 놓여 있던 장소였다.
경복궁 앞에서 시작되는 이 길은 단순한 도로가 아니라 국가의 중심축이었다.
왕권과 행정, 도시 질서와 상징 체계가 이 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하지만 이후 세종로는 오랜 시간 동안 끊임없이 변형되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도시 구조는 크게 변화했고, 근대 행정체계와 자동차 중심 도시계획이 들어오면서 세종로는 점점 거대한 교통축으로 바뀌어 갔다.
그 결과 오늘날의 광화문 일대는:
- 역사적 중심축
- 국가 상징축
- 자동차 중심 도시 구조
- 시민 보행 공간
이 서로 충돌하는 매우 복합적인 장소가 되었다.
현장에서 느껴졌던 세종로
자료를 읽는 것과 실제 현장을 걷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당시 현장사진들을 다시 보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압도적인 도로 스케일’이다.
세종로는 이미 하나의 거대한 차량 흐름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보행자는 광장의 중심이 아니라 거대한 도시 인프라 사이를 이동하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 긴 횡단 거리
- 단절된 보행 흐름
- 자동차 소음
- 중앙 공간의 어색한 비례감
- 광장보다 도로에 가까운 분위기
였다.
당시 우리는 이 장소를 단순히 “빈 광장 부지”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자동차 중심의 국가축을 시민의 공간으로 다시 읽을 수 있을까?
역사축과 도시축 사이
광화문 설계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역사축과 도시축의 관계였다.
광화문은 단순한 도시 광장이 아니다.
이곳에는:
- 조선의 궁궐 축
- 근대 국가 행정축
- 현대 서울의 교통축
- 시민 활동의 축
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초기 스케치 단계부터 이 문제를 계속 고민했다.
특히 스케치 안에 반복적으로 등장했던 단어들은 지금 다시 봐도 인상적이다.
- memory
- flow
- spine
- corridor
- heart
광장을 단순한 비워진 공간으로 만들기보다, 역사와 시민의 흐름이 중첩되는 장소로 읽으려 했던 흔적들이다.
당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거대한 광장 형태”보다 오히려 흐름이었다.
즉:
- 어떻게 걷게 할 것인가
- 어디에서 머무르게 할 것인가
- 어떤 시선이 만들어지는가
- 역사축을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가
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왜 거대한 광장을 만들지 않았는가
당시 많은 광장 프로젝트들은 강한 중심성과 상징적 형태를 추구했다.
하지만 우리의 안은 조금 다른 방향에 가까웠다.
우리는 광화문을 하나의 거대한 비움으로 만들기보다, 세종로 전체를 흐르는 선형적 도시 공간으로 읽고자 했다.
그래서 초기 스케치들에는 유기적인 흐름과 선형 구조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광장을 하나의 이벤트 공간으로 보기보다:
- 도시의 흐름
- 기억의 축
- 보행 경험
- 역사적 시선
이 이어지는 장소로 해석하려 했던 것이다.
지금 다시 보면 이것은 장점이면서 동시에 약점이기도 했다.
도시설계적으로는 의미가 있었지만, 강한 상징성과 즉각적인 장소성을 요구하던 당시 공공 프로젝트의 분위기 속에서는 다소 절제된 접근이었을지도 모른다.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이유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설계 과정은 사라진다.
특히 초기 스케치와 고민의 흔적들은 결과물 뒤편으로 밀려나 쉽게 잊혀진다.
하지만 도시를 만드는 것은 완성된 형태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 존재했던 수많은 질문과 선택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 기록은 단순히 “아이디어 설계작품”을 정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당시 우리가 광화문이라는 장소를 어떻게 읽고 있었는지, 그리고 서울이라는 도시의 중심을 어떤 방식으로 다시 상상하고 있었는지를 남기기 위한 기록에 가깝다.
다음 글에서는 당시 스케치들을 중심으로, 광장의 축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정리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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