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노트 010 - 커뮤니티는 어디에서 만들어질까

건축은 건물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가 머물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일이라고 여전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3 현상설계 노트, 도시와 관계를 담는 공동주택에 대한 고민

오래된 디자인 노트를 펼쳐보면 당시의 고민이 그대로 남아 있다.

2013년 현상설계를 준비하며 적어 놓은 이 노트 역시 그렇다.

페이지 상단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새로운 주거 TYPE을 제안하라.

지금 다시 읽어보니 당시 내가 고민했던 것은 새로운 형태의 공동주택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와 공동주택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가까웠다.

노트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도시가로에 대응하지 못했다.

무엇이 되었든 가로 대응 방식을 제안해야 한다.

당시 내가 생각했던 가로는 단순한 도로가 아니었다.

사람이 걷고,

잠시 머물고,

자연을 느끼고,

이웃을 만나는 공간.

보행과 생활, 자연과 조경이 함께 존재하는 생활가로였다.

그래서 공동주택 역시 도시와 분리된 섬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로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트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저층 + 고층의 새로운 단지계획기법의 제안

당시에도 고층 공동주택은 이미 일반적인 주거 유형이었다.

고층은 많은 세대를 수용할 수 있고 조망과 일조 확보에도 유리하다.

하지만 고층 건물만 반복되는 도시 풍경은 어딘가 차갑고 삭막하게 느껴졌다.

도시는 사람이 살아가는 장소인데 거리의 표정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서 저층과 고층을 함께 생각하기 시작했다.

저층은 도시와 사람을 연결하고,

고층은 주거의 밀도를 담당하는 방식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새로운 형태를 찾기보다 도시의 생명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것 같다.


노트 속에서 가장 오래 시선이 머무는 문장은 이것이다.

7 Units + 1 Community Cell

당시 나는 하나의 주거동을 8개의 단위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과감하게 다른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작은 정원이 될 수도 있고,

공중 파티오가 될 수도 있고,

커뮤니티 데크가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커뮤니티는 특정한 공간을 만들어 준다고 해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주민공동시설에서도 만나지만,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만나고,

복도에서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도 만난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적어 두었다.

커뮤니티 공간을 더 잘게 나누면 어떨까.

지금 다시 읽어도 꽤 흥미로운 질문이다.

노트 후반부에는

Patio + 마루

라는 메모가 남아 있다.

당시에는 거대한 중앙광장보다 작은 장소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마당 같은 공간.

데크 같은 공간.

잠시 머물 수 있는 그늘 같은 공간.

사람들은 그런 곳에서 자연스럽게 관계를 만든다.

그리고 이어지는 메모가 흥미롭다.

Urban Context에 대응하거나 영향을 주거나?

건축은 언제나 도시 안에 존재한다.

주변 환경에 반응해야 하고 때로는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Node, Path, Place, 장소성이라는 단어들을 적어 놓았던 것 같다.

노트의 마지막 문장인

Feel the AIR

는 당시의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문장인지도 모르겠다.

도시를 읽고,

사람의 움직임을 읽고,

그 장소의 분위기를 읽어내려 했던 흔적이다.


13년이 지난 지금 다시 노트를 펼쳐본다.

당시의 나는 새로운 공동주택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담을 수 있는 공동주택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도시와 연결되고,

자연과 연결되고,

사람과 연결되는 공간.

그리고 그 시작은 거대한 커뮤니티센터가 아니라 일상 속 작은 장소들이었다.

아마도 지금도 건축을 바라보는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건축은 건물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가 머물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일이라고 여전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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