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End Residence Report 003 | 좋은 집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하이엔드 주거’라는 용어가 지금처럼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전에는 넓은 집을 고급주택이라고 생각했다. 집의 면적이 넓어지면 필요한 공간을 여유 있게 배치할 수 있었고, 생활의 기능에 따라 실의 구분도 다양해졌다. 거실과 식당, 응접실을 나누고 가족을 위한 공간과 손님을 위한 공간도 별도로 계획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단독주택을 고급주택으로, 공동주택을 보다 일반적인 주거로 바라보는 인식도 강했다. 한 가족을 위한 넓은 대지와 독립된 건물, 다양한 실과 부속시설을 갖춘 단독주택이 고급주거의 대표적인 모습이었다.
예전의 고급주거는 넓어진 집에 필요한 공간과 시설을 하나씩 추가하는 계획에 가까웠다. 면적이 커질수록 더 다양한 기능을 담을 수 있었고, 일반적인 집과의 차이도 눈에 잘 드러났다.
지금의 하이엔드 주거는 방향이 조금 다르다.
넓은 면적과 좋은 재료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람들의 달라진 생활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이제는 시설의 다양성만을 앞세우기보다 거주자에게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서로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건축 안에 어떻게 담을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어떤 시설이 있는가보다 그 시설을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용하는가가 중요해진 것이다.
물론 하이엔드 레지던스를 판단하는 하나의 정해진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변화는 내가 건축을 계획하고 실제 공간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개인적인 생각이다.
주방은 어떻게 생활의 중심이 되었는가
주거공간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장소 가운데 하나가 주방이다.
과거의 주방은 음식을 조리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하며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다. 집 안에서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었지만, 생활의 중심이라기보다는 다른 공간을 지원하는 부속적인 성격이 강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주로 거실이나 식당이었다. 주방은 가능하면 조리 과정이 밖에서 잘 보이지 않도록 분리했고, 일을 마치면 오래 머물 필요가 없는 공간으로 계획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의 하이엔드 주거에서 주방의 방향은 많이 달라졌다.
이제 주방은 음식을 만드는 기능을 넘어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대화를 나누는 커뮤니티 공간이 되며, 때로는 혼자 머물러 생각할 수 있는 사색의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음식을 만들지 않는 시간에도 자연스럽게 머물 수 있어야 한다.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고, 간단한 업무를 처리하며 가족이나 방문한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과거에는 주방에서 얼마나 편리하게 조리할 수 있는가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그곳에서 어떤 시간을 보낼 수 있는가까지 함께 생각해야 한다. 기존에는 부속적인 느낌이 강했던 주방이 점차 생활의 중심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Gallery832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고려해 주방을 아일랜드형으로 계획했다.
주방 본래의 기능은 유지하면서도 거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기능만 강조하면 주방은 다시 독립된 작업 공간처럼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거실과의 관계만 생각하면 실제 조리에 필요한 기능과 편리함을 놓칠 수 있다.
두 가지 역할이 충돌하지 않으면서 하나의 공간으로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특히 주방과 거실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조명 계획에 많은 신경을 썼다.
아일랜드 주방에 앉으면 거실의 창을 통해 도시의 풍경이 보인다.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듯한 시간을 갖게 하고 싶었다. 창을 단순히 바깥을 내다보기 위한 개구부가 아니라 도시의 풍경을 집 안에 담아내는 건축적 프레임으로 생각했다.
음식을 준비하거나 차를 마시는 동안에도 도시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업무를 처리하다가 잠시 시선을 들었을 때도 빛과 하늘, 도시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주방의 변화는 단순히 아일랜드를 설치하거나 마감재를 고급화하는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의 달라진 생활을 받아들이고, 조리와 업무, 대화와 휴식이 하나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만드는 일이다.
시설의 다양성보다 실제 생활을 먼저 생각하다
하이엔드 레지던스의 어메니티 시설도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시설이 이용자의 필요와 생활 방식에 맞지 않으면 결국 외면받을 수 있다. 실제 생활과 관계없이 계획된 시설은 처음에는 새롭고 화려하게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용되지 않는 공간으로 남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시설의 수가 아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시설인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시설을 이용하는 시간이 삶에 어떤 즐거움을 더해 주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공동주택의 어메니티 시설은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한다. 따라서 한 가족을 위해 시설을 추가하던 과거의 고급주택과는 계획의 개념이 다르다. 서로 다른 생활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면서도 각자에게 필요한 경험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시설을 한곳에 모아 놓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용자의 생활과 맞지 않거나 접근하기 어렵고, 공간 자체에 머물고 싶은 이유가 없다면 시설의 다양성은 실제 가치로 이어지기 어렵다.
어메니티 시설을 최상층에 계획하다
Gallery832는 하이엔드 레지던스에서 갖추어야 할 어메니티 시설을 최상층부에 계획했다.
인피니티 풀과 스파, 피트니스, 라운지 클럽, 레스토랑과 가든이 그곳에 자리한다.
일반적인 공동주택에서는 이와 유사한 시설을 주로 지하에 배치한다. 지하에 설치된 시설은 사방이 막혀 있기 때문에 시설이 제공하는 기본적인 기능 외에 다른 즐거움을 느끼기 어렵다.
수영을 하고 운동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는 있지만, 자연광과 도시의 풍경, 계절과 시간의 변화까지 함께 경험하기는 어렵다.
Gallery832의 최상층 어메니티에서는 시설을 이용하면서 자연이 만들어 내는 풍경과 서울의 도시경관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아침에는 햇살이 공간 안으로 들어오고, 저녁에는 도시 위로 노을이 펼쳐진다. 계절에 따라 하늘의 빛과 풍경이 달라지고, 날씨에 따라서도 공간의 표정이 변한다.
시설을 이용하는 행위는 같더라도 어떤 공간에서 무엇을 바라보며 그 시간을 보내는가에 따라 경험의 깊이는 달라진다.
최상층의 인피니티 풀에서는 한 공간 안에서도 두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수영장 안에 들어가면 물의 경계와 서울의 풍경이 이어진다. 그 순간에는 마치 도시 위에 떠 있는 듯한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수영장 데크로 나오면 경험은 달라진다. 한 걸음 물러서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며 평온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수영장 안에서는 풍경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경험을 하고, 데크에서는 그 풍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바라보게 된다.
최상층에 어메니티 시설을 계획한 것은 시설의 특별함만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선택은 아니었다.
평범하게 반복되는 하루 안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공간을 만나고, 자연이 만드는 풍경과 도시의 아름다운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만들기 위한 계획이었다.
같은 시설이라도 어디에 두고, 무엇과 연결하며, 어떤 시간을 경험하게 하는가에 따라 공간의 가치는 달라진다.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집
주거의 유행은 계속 달라지고 사람들이 원하는 시설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집을 좋은 집이라고 생각하는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가구를 새로 놓거나 인테리어를 다시 하지 않아도,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자연스러운 공간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집이다. 그리고 그 변화가 사람의 긴장을 풀어 주고 편안함으로 이어져야 한다.
좋은 집에서는 실내에서도 시간의 변화와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아침과 저녁의 빛이 다르고, 계절에 따라 창밖의 풍경과 실내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같은 장소에 머물러 있어도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깊이가 달라지고, 창을 통해 보이는 하늘과 도시의 표정도 계속 변한다.
사람은 가구를 바꾸거나 집을 새롭게 꾸미지 않아도 그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건축이 빛과 자연, 시간과 계절을 실내로 받아들일 때 반복되는 일상에도 자연스러운 분위기의 전환이 생긴다.
과거에는 넓은 면적과 다양한 실, 집에 추가된 시설을 통해 고급주거의 차이를 설명했다면, 지금은 공간이 사람의 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일상에 어떤 경험과 감정을 더해 주는가를 함께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집은 특정한 시설이나 하나의 형식만으로 규정되는 집이 아니다.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편안함을 느끼고, 그 안에서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집이다.
좋은 집을 바라보는 관점은 그렇게 달라지고 있다.
A Note from PNH
Luxury housing is no longer defined only by size or by the number of facilities it contains. What matters is how a home responds to changing ways of living, and how shared amenities become part of everyday experience. In Gallery832, the kitchen and the amenities at the top of the building were planned as places where light, landscape, time, and daily life could m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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