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파사드가 되는 과정 | Design Note 014

대학원 파사드 디자인 수업에서 레퍼런스와 스케치, 패턴 연구, 빛과 개방성, 시공 가능성을 거쳐 생각이 건축 외피로 발전한 과정을 기록합니다.
화이트 노출콘크리트의 패턴과 사람이 머무는 외피 공간을 보여주는 Design Note 014 커버

2014년 5월 29일, 대학원 파사드 디자인 수업을 위해 시작한 작업이다.

과제의 조건은 명확했다. 7m×7m 스팬, 6개 모듈, 7층 규모, 그리고 자유로운 개념. 정해진 구조적 틀 안에서 얼마나 새로운 파사드를 만들 수 있는지가 이 작업의 출발점이었다.

당시 나는 Herzog & de Meuron의 Tenerife Espacio de las Artes를 레퍼런스로 선택했다. 파사드 자체가 건축의 인상을 결정하면서도 자유롭고 정돈된 질서를 함께 보여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평이하지 않은 외피를 통해 랜드마크적 성격을 만드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레퍼런스를 고른 이유는 형태를 닮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유로움과 질서가 하나의 파사드 안에서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레퍼런스와 재료, 빛, 개방성의 관계를 정리한 파사드 계획 방향 스케치

레퍼런스와 재료, 빛, 개방성의 관계를 정리하며 파사드의 방향을 찾은 초기 구상 스케치.

생각을 패턴으로 옮기다

처음부터 완성된 패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스케치 과정에서 여러 형태와 조합을 만들었다. 각각의 패턴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기능적으로도 성립할 수 있는지 하나씩 검토했다. 가능성이 약한 것은 과감히 버리고, 남길 것은 기능과 아름다움을 함께 생각하며 발전시켰다.

형태와 패턴, 개구부의 관계를 자유롭게 탐색한 첫 번째 개념 스케치

형태와 패턴, 개구부의 관계를 자유롭게 탐색한 첫 번째 개념 스케치.

선은 곧바로 파사드가 되지 않는다. 작은 사각형과 삼각형, 비워진 면과 채워진 면을 반복해 그리며 서로 다른 패턴이 한 화면 안에서 어떤 질서를 만들 수 있는지 살폈다.

2014년 5월 29일 개방부와 프레임의 크기를 조정한 두 번째 파사드 개념 스케치

2014년 5월 29일, 개방부와 프레임의 크기를 조정하며 입면의 질서를 구체화한 스케치.

파사드 디자인의 발전 단계에서는 매스와 어울리는 패턴을 다시 만들었다. 손으로 빠르게 가능성을 확인한 뒤에는 캐드 작업을 병행하며 치수와 반복의 규칙을 정밀하게 조정했다. 생각이 실제 파사드의 언어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다.

자유로운 패턴에 질서를 부여하다

화이트 노출콘크리트를 주재료로 설정했다. 하나의 단단한 재료 위에서 패턴의 크기와 깊이, 개구부의 위치가 어떻게 달라 보이는지를 검토했다.

자유로운 구성일수록 기준이 필요했다. 모든 면을 다르게 만들기보다 반복되는 모듈 안에서 크기와 밀도에 변화를 주었다. 큰 개구부와 작은 패턴, 닫힌 면과 열린 면이 서로 균형을 이루도록 조정했다.

전면과 측면의 패턴과 매스 비례를 비교한 스킨 패턴 디자인 도면

전면과 측면의 패턴, 매스와 개구부의 비례를 비교하며 외피의 구성 원리를 정리한 과정.

정리된 패턴은 다시 손으로 검토했다. 매스와 개구부, 반복되는 패턴의 관계를 도면 위에서 조정하며 전체 파사드의 균형을 찾아갔다.

정리된 패턴 위에 손으로 수정하며 외피 구성을 최종 검토한 파사드 연구 도면

정리된 패턴 위에 다시 손으로 수정하며 매스와 외피의 관계를 조정한 과정.

빛이 만드는 또 하나의 공간

이 작업에서 가장 크게 생각한 것은 빛이었다.

빛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공간을 만든다. 때로는 그림자로, 때로는 밝기로 같은 벽을 전혀 다르게 보이게 한다. 서로 다른 크기와 깊이를 가진 패턴은 들어오는 빛의 양을 바꾸고, 시간에 따라 그림자의 형태도 달라지게 한다.

그 공간을 체험하는 일은 일반적인 벽과 창이 만드는 경험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방부는 사람을 건물의 외벽 가까이 불러내는 장치다. 그곳에서 바깥의 자연과 만나고, 빛과 바람을 직접 느끼기를 기대했다. 동시에 실내에 신선한 공기를 들이는 기능적인 장치이기도 하다.

과스케일이 만드는 낯선 경험

일부 패턴은 사람의 몸보다 훨씬 크게 계획했다.

과스케일된 외피는 일상적인 창이나 벽과 다른 중압감과 새로움을 만든다. 그러나 크기만 키운다고 건축적 경험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머무는 위치, 시선의 높이, 내부 공간과의 관계가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밀도와 크기의 패턴을 하나의 질서로 통합한 7층 파사드 최종 입면도

서로 다른 밀도와 크기의 패턴을 하나의 입면 질서로 통합한 최종 파사드 디자인.

최종안에서는 외피의 패턴만 보이게 하지 않았다. 파사드 안쪽에 사람들이 서고 걷고 머무는 공간을 두어, 외피가 실제 생활과 만나는 장면을 함께 표현했다.

빛과 바람, 사람의 움직임이 만나는 외피 안쪽 공간을 보여주는 파사드 상세 입면

빛과 바람, 사람의 움직임이 만나는 외피 안쪽 공간을 사람의 눈높이에서 검토한 최종 디자인.

지어질 수 있는 생각이어야 한다

스케치가 자유로울수록 마지막에는 더 냉정한 검토가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라도 지어질 가능성을 얻지 못하면 생각의 틀을 깨지 못한 채 종이 위에 머물 수 있다. 패턴의 반복이 구조와 어떻게 만나는지, 화이트 노출콘크리트로 구현할 수 있는지, 개구부가 빛과 환기의 역할을 수행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이 작업은 하나의 완성된 파사드보다 생각이 건축의 언어로 변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레퍼런스에서 질문을 발견하고, 스케치로 가능성을 넓히고, 도면으로 질서를 세우며, 마지막에는 사람이 경험할 공간과 시공 가능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지금 다시 보아도 파사드는 건물의 겉모습만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빛과 바람을 조절하고, 사람을 외부와 만나게 하며, 건축의 표정을 만드는 공간의 경계다.

건축가가 무엇을 스케치하는가보다, 그 선이 무엇을 바꾸는지를 묻습니다.

스케치·도면 및 이미지 직접 작성 · 참고 작품: Tenerife Espacio de las Artes, Herzog & de Meuron

Architect Park Nohhyun. Recording the journey from thought to space. Architect 박노현. 생각이 공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