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Note 005 - 건축은 어떻게 답을 찾는가
디자인 노트를 넘기며....
오래된 디자인 노트를 넘기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에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한 고민이었지만,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보면 그 안에는 내가 건축을 바라보던 방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번 노트 역시 마찬가지다.
페이지마다 서로 다른 스케치들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모두 건축을 풀어가는 과정이고 생각의 파편들이다. 원본 노트에는 더 많은 낙서 같은 글들과 선들이 남아 있다. 당시에는 무심코 적어놓은 흔적들이지만 지금 다시 보면 모두 같은 질문을 향해 가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마치 건축을 풀어가는 하나의 공식을 찾으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건축 디자인은 어떻게 답을 찾는가?
형태일까.
공간일까.
아니면 자연일까.
그도 아니면 이 모든 조건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만들어내는 결과일까.
자연과 건축의 첫 만남
첫 번째 스케치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다.
"자연과 건축물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여 자연스러운 동선의 흐름을 유도한다."
건축 디자인을 할 때 우리는 종종 건축물의 외형을 먼저 생각한다. 많은 건축들이 장소성과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은 건축물을 만나기 전에 먼저 장소를 경험한다.
습관처럼 길을 따라 걷고,
주변의 바람을 느끼고,
자연이 보여주는 풍경을 읽으며,
서서히 건축에 도달한다.
좋은 건축은 건물 자체보다 그 건축에 이르는 경험을 먼저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도 첫인상이 중요하듯이, 건축과의 만남에도 첫인상이 존재한다.
건축물의 외형은 그 다음의 이야기일 수 있다.
이 스케치는 그런 의미에서 건축과 자연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고민한 흔적이다.
건축을 자연 위에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건축이 어떻게 자리 잡아야 하는가를 생각했던 기록이다.
균형을 찾는 과정
노트의 다른 페이지에는 다양한 메모들이 남아 있다.
대칭성과 비대칭성.
전체성과 개성.
안정감과 조형성.
그리고 사람들이 느끼는 아름다움에 대한 질문들.
설계를 하다 보면 결국 모든 프로젝트는 이런 선택의 연속이 된다.
무엇을 강조할 것인가.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어디에 중심을 둘 것인가.
어떤 건축은 안정감을 선택하고,
어떤 건축은 강한 개성을 선택한다.
하지만 좋은 건축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가치들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균형점을 찾아간다.
건축은 정답을 찾는 작업이라기보다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가장 적절한 균형을 선택하는 과정에 가깝다.
형태는 이유를 가져야 한다
세 번째 스케치에서는 형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보인다.
매스가 잘리고,
열리고,
빛이 들어올 틈이 만들어지고,
입면의 질서가 정리된다.
건축을 공부할 때 흔히 형태를 만드는 것이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프로젝트에서는 그렇지 않다.
형태는 이유 없이 만들어질 수 없다.
빛 때문일 수도 있고,
기능 때문일 수도 있으며,
장소가 요구하는 조건 때문일 수도 있다.
건축가는 형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형태가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를 찾아가는 사람에 가깝다.
그 이유가 충분히 설득력을 가질 때 비로소 형태는 의미를 갖게 된다.
건축가는 스스로를 설득하는 사람이다
노트를 다시 읽으며 느끼는 것은 하나다.
처음부터 정답을 알고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선을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리고,
비교하고,
의심하고,
또다시 그려본다.
그 과정 속에서 생각은 조금씩 깊어진다.
스케치는 형태를 기록하는 도구가 아니다.
건축가가 스스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다.
건축가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건축을 건축주에게 설득할 수는 없다.
그래서 디자인 노트는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건축은 조금씩 자신의 이유를 찾아간다.
Design Note 005
건축의 형태는 건축가의 생각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장소와 자연, 기능이 먼저 방향을 제시하면,
건축가는 그 안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공간과 형태를 디자인하는 사람이다.
좋은 건축은 아름다운 형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장소를 이해하고,
자연을 읽고,
관계를 만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과정 속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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