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형 생태도시, 김포 수기마을 | Project 009

2005년 사업승인 후 2008년 준공된 김포 수기마을. 산과 대보천을 잇는 생태동선, 레벨 차이를 활용한 커뮤니티시설, 사계절 색채와 3단지 면진구조의 시범 적용 과정을 돌아본다.
야간 수변 풍경과 김포 수기마을 주거동을 담은 Project Archive 009 커버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이 프로젝트를 다시 들춰본다. 수십 번 고쳐 그렸던 단지 배치와 조경 개념, 레벨 구상, 커뮤니티시설의 공간구성, 차량 동선이 지금도 생생하다.

근린공원의 자연이 단지 안으로 스며들고, 주민들이 단지 어느 곳이든 걸어서 갈 수 있는 동선을 만들고 싶었다. 역할상 실시설계까지 담당하지는 못했지만, 여러 단계의 설계 과정에 지속해서 참여했던 기억은 여전히 새롭다.

PROJECT INFORMATION

프로젝트명 | 김포 수기마을 · Gimpo Sugi Village
위치·사업방식 | 경기도 김포시 고촌면 신곡리 · 도시개발사업
사업기간 | 2005년 사업승인 · 2008년 4월 준공
대지·건축·연면적 | 169,815.29㎡ · 33,962.75㎡ · 511,661.45㎡
규모 | 지하 2층 · 지상 15층
수상 | 2008 한국건축문화대상 대상(공동주거부문)
설계·역할 | 원양건축 · 단지계획 및 사업승인
스케치·이미지 출처 | PNH(스케치) · 원양건축(이미지)

산지와 대보천 사이 김포 수기마을의 전체 배치와 주거동을 보여주는 항공사진
산지와 대보천 사이에 자리 잡은 김포 수기마을의 전체 배치.

산과 하천 사이에서 시작한 단지계획

김포 수기마을은 주변 생태계와 도시의 편의성이 공존하는 자족형 생태도시를 목표로 했다. 서측의 산지와 고촌근린공원, 동측의 대보천이 만드는 생태경관을 단지계획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각 단지는 산과 하천을 잇는 생태통로를 단지 내부의 보행체계와 적극적으로 연계했다. 기존 산지는 공원으로 정비해 주민들이 자연을 더 편리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산책로와 조경형 계류, 벽천, 유실수원과 총림을 연결해 사람과 자연이 일상에서 만나는 구조를 만들고자 했다.

근린공원과 보행동선, 주거블록의 관계를 직접 검토한 김포 수기마을 단지구상 스케치
근린공원의 자연과 보행체계, 주거블록의 관계를 함께 검토한 초기 단지 구상.
조경형 계류와 수목 사이로 김포 수기마을 주거동이 보이는 준공 풍경
조경형 계류와 수목이 주거동 사이의 생활공간으로 이어진 준공 풍경.

단지 전체를 하나의 생활 네트워크로

공동주택에서 커뮤니티의 중요성은 생활방식의 변화와 함께 계속 커지고 있었다. 단순히 주거 유니트를 반복해서 쌓는 것만으로는 주민의 일상을 담기 어려웠다. 그래서 유아와 청소년, 성인과 노인, 가족 단위의 활동이 서로 단절되지 않도록 단지 전체를 하나의 생활 네트워크로 구성했다.

당시 제시된 로하스(LOHAS)의 가치를 생활공간으로 옮기기 위해 단지를 순환하는 산책로와 조깅로, 생태공간과 연령별 외부활동 공간을 잇고, 그 흐름이 커뮤니티시설과 자연스럽게 만나도록 했다. 커뮤니티시설은 남는 자리에 배치한 부속 건물이 아니라, 보행과 만남을 조직하는 단지의 새로운 중심이었다.

레벨 차이를 생활의 장치로 바꾸다

단지에는 한 층 정도의 레벨 차이가 있었다. 이를 단순한 경사나 장애로 남겨두지 않고, 커뮤니티시설을 높이가 바뀌는 지점에 배치해 서로 다른 보행 레벨을 잇는 장치로 삼았다. 데크를 설치해 끊어질 수 있는 동선을 연결하고, 산책의 흐름이 커뮤니티시설을 거쳐 다시 단지 곳곳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커뮤니티시설은 1층에 노인정과 보육시설, 2층에 다목적실과 독서실을 두었다. 지하층에는 톱라이트를 설치해 어두운 환경을 개선하고 길을 찾는 기준점이 되도록 했다. 조망데크는 산책하다가 잠시 쉬거나 이웃과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장소로 계획했다.

한 층 높이의 레벨 차이와 데크, 톱라이트, 커뮤니티시설을 검토한 동선 스케치
한 층 높이의 레벨 차이를 커뮤니티시설과 데크로 연결하기 위한 동선 구상.
데크와 외부공간으로 연결된 김포 수기마을 커뮤니티시설 준공사진과 평면
1층과 2층의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담고 서로 다른 보행 레벨을 연결한 커뮤니티시설.

로비를 주민의 공공장소로

주동의 로비도 통과만을 위한 공간에 머물지 않기를 바랐다. 호텔식 로비의 개념을 적용해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머물고 만날 수 있는 공공장소로 역할을 넓혔다. 사람들이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쌓여야 공동주택의 공용공간도 풍요로워지고 생활의 편리함도 더해진다고 생각했다.

주거동은 전체 가구의 96% 이상을 남향으로 배치하고, 다각형 발코니와 돌출형 베이윈도우를 통해 조망을 넓히고자 했다. 거실 전면에는 난간 없이도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강화유리를 적용해 당시의 일반적인 공동주택과 다른 입면을 만들었다.

사계절을 주제로 한 그라데이션 색채가 적용된 김포 수기마을 주동과 생활공간
사계절을 주제로 한 그라데이션 색채가 적용된 주동과 단지 내부 공간.

사계절의 색채가 단지의 표정이 되다

입면 색채는 세계적인 색채 디자이너 장 필리프 랑클로의 자문을 받아 사계절을 주제로 구성했다. 층과 동에 따라 이어지는 그라데이션은 당시의 회색 계열 아파트에서 보기 어려운 시도였다. 자연의 색이 건축의 표정으로 이어지면서 단지에 활력을 더했고, 시간이 지나 수목이 성장한 뒤에도 주변 풍경과 어울릴 수 있는 색채체계를 만들고자 했다.

대보천 수면에 반영된 김포 수기마을 주거동과 사계절 입면 색채
대보천과 마주한 주거동의 입면. 색채 변화가 수변 풍경과 단지의 표정을 만든다.

항공고도 제한 속에서 만든 열린 공간

항공고도 제한으로 층수를 충분히 높일 수 없었던 점은 단지계획의 큰 제약이었다. 기계실 없는 엘리베이터를 검토할 만큼 높이 조건이 엄격했다. 고층과 저층을 자유롭게 조합할 수 있었다면 통경축과 바람길, 스카이라인을 더 적극적으로 만들 수 있었겠지만 주어진 조건 안에서 해법을 찾아야 했다.

준공 뒤 돌아보니 주동 사이의 이격거리가 예상보다 충분했고, 단지 곳곳에서 열린 공간이 잘 드러났다. 높이의 변화로 만들지 못한 개방감을 동 사이의 거리와 녹지, 보행공간이 대신 만들어 주었다.

공동주택에 적용한 면진구조

3단지에는 국내 공동주택 최초로 면진구조를 시범 적용했다. 지하와 지상의 구조체 사이에 면진장치를 설치해 지진 때 지반의 움직임이 상부 건물에 직접 전달되는 것을 줄이는 방식이다. 당시에는 주로 정밀한 실험 환경이 필요한 연구시설에 사용되던 기술이어서, 주거에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지를 두고 의문도 많았다.

새로운 기술을 공동주택에 적용하는 일은 구조적 안전성과 시공 가능성을 함께 증명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3단지에 한정한 시범 적용이었지만, 주거의 안전 기준을 한 단계 넓혀보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김포 수기마을 3단지 면진장치의 기초 형틀부터 본체 설치까지 보여주는 시공과정
3단지에 시범 적용한 면진장치의 설치 및 검수 과정.

계획이 생활이 된 이후

준공 후 계획대로 커뮤니티시설과 생태동선이 구현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촌근린공원의 자연은 단지 안으로 이어졌고, 데크와 산책로는 서로 다른 높이의 공간을 연결했다. 단지 어느 곳이든 걸어서 닿을 수 있는 생활의 구조가 실제 장소로 남았다는 점이 무엇보다 만족스러웠다.

2008 한국건축문화대상 공동주거부문 대상을 받은 일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두에게 큰 영광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오랫동안 붙들었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받은 순간이기도 했다.

공동주택의 여러 장소에서 건축적 아름다움과 자연이 어우러지고, 그 안에서 사람들의 일상이 조금 더 풍요로워지기를 바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살아나는 공간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나무가 자라고 숲이 깊어지면 단지의 표정도 함께 달라지기 때문이다.

Architect Park Nohhyun. Recording the journey from thought to space. Architect 박노현. 생각이 공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