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Note 003 - 랜드마크는 무엇으로 기억되는가

사람들은 건물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에서의 경험을 기억한다.

 

LANDMARK / NATURE / SYMBOL / PLACE


오래된 디자인 노트를 다시 펼쳐보면 가끔 그 시절의 내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 마주하게 된다.

이번 노트도 그랬다.

페이지 한쪽에 크게 적혀 있는 단어.

LANDMARK

그리고 그 옆에 적혀 있는 질문.

"랜드마크란 무엇인가?"

아마도 당시의 나는 어떤 상징적인 건축물을 구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노트를 다시 보니 관심은 건축물의 크기나 형태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건축이 어떤 장소에 놓이고 어떤 의미를 갖게 될 것인가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었다.


자연을 바라보며

첫 번째 스케치에는 바람의 흐름과 자연의 형상이 그려져 있다.

당시에는 무심코 그렸을지 모르지만 지금 다시 보니 자연을 관찰하려는 흔적들이 보인다.

좋은 건축은 자연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건물을 먼저 상상하기보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보고,

빛이 머무는 방향을 살피고,

대지가 가진 흐름을 읽으려 했다.

지금도 설계를 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장소다.

어쩌면 그 생각은 오래전부터 크게 변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형태를 찾기보다 의미를 찾다

노트 중간에는 다양한 형태 스케치들이 등장한다.

당시에는 새로운 조형을 찾기 위해 많은 선을 그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보니 형태 자체보다 그 안에 담고 싶었던 의미가 더 눈에 들어온다.

왜 이런 형태를 생각했을까.

왜 이런 상징을 만들고 싶었을까.

아마도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건축은 결국 형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기억을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


랜드마크에 대한 오래된 질문

노트 마지막에는 랜드마크에 대한 고민이 남아 있다.

높은 건물.

강한 상징.

도시를 대표하는 형태.

하지만 그 옆에는 또 다른 가능성도 함께 그려져 있다.

지금 다시 보니 당시의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것 같다.

랜드마크는 정말 높아야 하는가.

눈에 띄어야만 하는가.

아니면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는 장소가 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정답은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좋은 건축이 반드시 큰 건축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노트를 다시 읽으며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읽는 디자인 노트는 가끔 낯설다.

어떤 생각은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스케치는 왜 그렸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은 지금도 여전히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번 노트가 그랬다.

랜드마크란 무엇인가.

좋은 건축은 무엇으로 기억되는가.

그리고 건축은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오래전 적어 놓은 메모 한 줄이 눈에 들어온다.

"건축물은 매번 자연과 소통해야 한다."

지금도 그 문장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어쩌면 좋은 랜드마크란 도시를 지배하는 건축이 아니라,

자연과 장소,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건축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건물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에서의 경험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