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02] 푸른 도시 선언 : Net Green
Net Green
오래된 노트를 정리하다 발견한 원고이다.
2013년 선릉 일대를 바라보며 적어 두었던 생각들이다. 지금 읽어보면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도시와 녹지 그리고 사람들이 머무는 장소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당시 원고를 큰 수정 없이 기록으로 남긴다.

4,500원.
커피 한 잔의 가격이다.
언제부터인가 커피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커피를 즐기지 않는 사람조차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자연스럽게 커피전문점을 찾는다. 우리는 그렇게 한 잔의 커피를 소비한다.
하지만 주변에 수많은 커피전문점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유독 특정한 곳을 반복해서 찾는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나는 야외 데크가 마련된 공간을 선호한다.
몇 해 전 독일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있다.
바쁜 아침 시간, 한 젊은 남성이 커피숍 앞 데크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 잔과 신문을 읽고 있었다. 특별한 장면은 아니었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 지금, 내가 근무하고 있는 선릉 주변의 모습은 그때 보았던 풍경을 조금씩 닮아가고 있다. 그런 삶의 방식을 동경하는 사람들의 욕구와 이를 활용한 공간 마케팅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진 결과일지도 모른다.
4,500원.
누구나 부담 없이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일 수 있다.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우리는 매일 커피를 소비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이 있는 공간을 함께 소비한다.
사람들이 찾는 이유
우리가 편안함을 느끼는 녹색, 즉 Green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다.
그것은 지속되어야 하며,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도시의 자산이다.
하지만 도시를 둘러보면 누구나 함께 누릴 수 있는 녹색 공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건물 내부와 외부의 공간은 대부분 사유화되어 있고, 녹지는 종종 관리의 대상이나 비용으로만 인식된다.
만약 생각을 조금 바꿔본다면 어떨까.
녹색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곧 사람을 끌어들이는 경쟁력이 될 수 있다면 말이다.
사람들이 특정 카페를 찾는 이유가 좋은 커피 때문만은 아니다. 편안한 야외 공간, 나무 그늘,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장소성이 고객을 불러들이고, 결과적으로 건물의 가치와 수익으로 이어진다면 굳이 강제적인 정책이 아니더라도 건물 소유자 스스로 녹색 공간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Net Green
나는 이러한 도시 속 녹지의 연결을 Net Green이라 부르고 싶다.
도시 곳곳에 존재하는 작은 녹색 공간들이 네트워크처럼 연결되어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작은 정원
건물 앞의 휴게 공간
가로수 아래의 쉼터
골목의 자투리 녹지
이러한 공간들이 하나씩 연결된다면 도시는 훨씬 풍요로운 장소가 될 수 있다.
선릉에서 시작하는 상상
선릉과 그 주변을 바라보며 생각해 본다.
선릉공원을 중심으로 주변의 주차장, 자투리 공간, 활용되지 못하는 도시 공간들이 살아 있는 녹지와 휴식 공간으로 변한다면 어떨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모이고,
걷게 되고,
머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Net Green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
거점이 되는 공원과 그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작은 녹색 공간들은 도시인의 삶에 여유를 제공하고, 동시에 상업적 활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나의 작은 시설이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듯, 작은 녹색 공간의 연결은 도시 전체의 풍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
상업과 휴식.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는 도시 전략이 바로 Net Green이 아닐까.
누군가의 노력과 시민들의 참여가 더해진다면, 도시의 녹색 네트워크는 명품거리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2013년 4월, 선릉 일대를 바라보며 기록한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2013.04.08
박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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