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것과 새로움의 차이 | Architecture Essay 007
담장 너머의 건축물
오래전 타슈켄트 출장 중이었다.
한국에서 5,000km 이상 떨어진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담장 너머로 건축물 하나가 살짝 보였다.
그 순간 새로운 건축물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낡아 있었다.
새것은 아니었다.
그 건물을 바라보는 동안 누군가의 고민과 생각 속에 잠시 앉아 있는 듯했다. 세련되었든 그렇지 못하든, 그 안에 담긴 생각은 또 다른 상상의 즐거움을 주었다.
간단한 MASS였고 단순한 건축물이었지만 힘이 있어 보였다.
아마 처음 지어졌을 때는 주위를 압도했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당당하게 드러내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그것으로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새것에 밀려난 시간
그러나 건축물은 이제 이름 없이 담장 안에 갇혀 있었다.
한때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건축물의 색은 슬퍼 보였다.
늙은 것일까. 새것에 기가 죽은 것일까.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생명력이 다해가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일까.
한때 고즈넉했을 주변에는 차량의 소음이 가득했고, 낯선 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도시와 사람들의 생활은 달라졌지만 건축물은 그 변화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렇듯 건축도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당시에는 그 건축물이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새것에 밀려났다고 생각했다. 더는 사람들에게 새로움을 주지 못하는 건축이 되어가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한 가지 질문이 남았다.
건축에 언제나 새로움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 안에 담긴 사람이 아닐까.
타슈켄트 출장 중 담장 너머의 건축물을 바라보며 남긴 원본노트. 새것과 새로움, 건축의 시간에 관한 질문이 이 글의 출발점이 되었다.
사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질문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달라졌다.
사람이 담긴다는 이유만으로 건축이 오랜 시간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가 바뀌고 새로운 생활이 이어져도 모든 건축물이 새롭게 남는 것은 아니다.
건축물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신의 영혼과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건축가의 말이나 설명이 아니다. 건축물이 자신을 드러내는 힘이며, 시간이 지나 외형이 낡아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근본이다.
타슈켄트의 그 건축물이 오랫동안 강렬한 인상으로 남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단순한 MASS였지만 분명한 힘이 있었다. 담장에 가려지고 도시의 중심에서 밀려났어도 자신이 어떤 건축이었는지를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
그 안에는 처음 이 건축물을 설계했던 건축가의 철학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연민만으로는 오랫동안 기억되지 않는다.
사라져가는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그 건축물이 다시 생각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직 자신을 드러내는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가 다시 읽는 철학
시대가 바뀌면 건축에 담긴 철학도 다르게 읽힌다.
건축물이 태어날 당시의 생각과 가치가 다음 시대에 똑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도시가 달라지고 사람들의 생활이 변하면 건축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그러나 처음의 생각이 분명한 건축은 새로운 시대와 만날 때마다 다른 의미로 읽힐 수 있다.
처음에는 형태와 기술이 새로웠던 건축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당시의 정신을 보여주는 기록이 될 수 있다. 한때는 익숙한 생활을 담았던 공간이 다음 세대에는 새로운 상상과 질문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새로움은 새것의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과 사람의 변화 속에서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다.
사람은 건축에 새로움을 부여하는 유일한 존재가 아니다. 건축물에 처음부터 담겨 있던 생각과 힘을 시대마다 새롭게 발견하는 존재에 가깝다.
자신만의 생각을 분명히 담지 못한 건축은 새것의 시간이 지나면 쉽게 기억에서 멀어진다.
분명한 생각을 가진 건축은 낡은 뒤에도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건축물도 태어나고 사라진다
건축물도 태어나고 사라진다.
새로운 필요와 생각 속에서 태어나 사람들의 생활을 담고, 시대와 함께 자신의 역할을 이어간다. 그리고 언젠가 그 쓰임을 다하면 철거되어 사라진다.
건축물이 철거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쓰임을 다하고 물리적인 생을 마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분명한 생각을 담은 건축물이라면 물리적인 모습이 사라진 뒤에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 건축물을 경험했던 사람의 기억 속에 남고, 다른 건축가에게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며, 다음 시대의 건축 안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이어진다.
타슈켄트의 담장 너머에 있던 건축물이 지금도 남아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날 잠시 모습을 드러낸 건축물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하나의 질문으로 남아 있다.
무엇이 건축을 오래도록 새롭게 하는가.
새것은 시간이 지나면 낡는다.
그러나 영혼과 철학이 담긴 건축은 시대와 사용자가 바뀌어도 다시 읽힌다.
그리고 물리적인 생을 다한 뒤에도 사람의 마음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대화 참여하기